미국생활 이십년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워싱턴생활 12년째를 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텍사스 생활만 경험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나도 숭미주의자/찬미주의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의 12년생활은 한반도를 되돌아 보게 만들었습니다. Korea라는 브랜드는 삼성의 코리아도, 현대의 코리아도, LG의 코리아도 아니었습니다. 코리아는 North Korea, 북핵, 빈곤, 아사, 굶주림, 인권, 독재, 김정일, 김정은, 전쟁, 위험, 이런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중국보다도, 동남아시아의 국가보다도 여행가면 위험한 나라로 이곳 미국시민들에게는 인식되어있었습니다. 매체의 지속적인 홍보(??) 덕분이겠지요. 코리아라는 국가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높아질수 없지만, 가장 빠른 길은 통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orth Korea와 South Korea라는 썀쌍둥이처럼 함께 붙어다닙니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지 않는한 외국인들에게는 코리아는 늘 North Korea와 South Korea가 함께 인식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안에서는 이런 관점을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가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국밖에 사는 한국아줌마의 한반도 이해하기라는 블로거를 열어보았습니다.

Tuesday, March 18, 2014

법륜스님, 평범한 시민이 통일나서야

http://hopeplanner.tistory.com/562#.UyeuTyaPI1I

법륜 스님 "평범한 시민이 나서야 통일 돼"
hopeplanner.tistory.com
봄기운이 샘솟는 2014년 3월16일,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출범식’>이 백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렸습니다.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약칭, 통일의병)은 평화재단 교육원에서 진행한 평화리더십아카데미와
 
전문은 위를 클릭해야 나옵니다.
 
그리고 스님의 하루에 나온 희망플래너님의 글입니다.
근처에서 칼국수로 점심 공양을 드신 후 잠시 백범기념공원을 산책한 후 행사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오후 2시부터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출범식’>이 백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렸습니다.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약칭, 통일의병)은 평화재단 교육원에서 진행한 평화리더십아카데미와 여성리더십아카데미 수료생들을 중심으로 우리민족의 시대적 과제인 통일을 염원하는 생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대외적으로 통일의병의 존재를 알리고 활동을 시작하는 첫 번째 행사입니다. 통일의병의 대표는 김홍신 작가님과 조성식 회장님(서울시 녹색산업협회)이 공동으로 맡아 주셨고, 김명혁 목사님(세계복음주의협의회 회장)과 법륜스님께서는 고문을 맡으셨습니다.
행사는 시작부터 4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통일의병 소개 영상에 이어서 웅장한 북소리가 행사장 전체를 가득 메우니 이제 막 웅비하려는 통일의병의 기상을 상징하는 것 같아 가슴이 뛰었습니다. 북 소리를 들으며 시작은 비록 미약하지만 남북한 주민들 모두에게 오늘의 이 첫 마음이 널리 전해지길 간절히 발원했습니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님의 축사가 있은 후 스님께서는 연단에 오르셔서 오늘 출범식을 기념하는 격려사를 해주셨습니다  
오늘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출범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 환영합니다. 우리는 의병인데 어떤 의병인가?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여 통일 조국을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병입니다. 의병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첫째 관군인가? 관군 아닙니다. 그러면 반군인가? 반군도 아닙니다. 관군이란 것은 국가의 녹을 먹고 직업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의병은 그런 국가의 녹을 먹고 직업적으로 지위를 가지고 국가를 보호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평범한 백성들입니다. 농사짓거나 장사하거나 선비이거나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즉 관군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관군을 비난하고 관군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고, 그 관군을 격려하고 관군이 못하는 일을 보조하며 하는 게 의병입니다  
그러니까 의병은 전문가들이 아닙니다. 의병은 아마추어들이고 의병은 자원봉사자들입니다. 농사짓던 사람이 낫이나 곡괭이를 들고, 사냥하던 사람이 활이나 총포를 들고, 장사하는 사람이 재정을 대고, 이런 식으로 일반 백성들이 일어나서 나라를 지키는 그런 운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병이라는 말 속에는 첫째, 자발성이 담겨 있습니다. 의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식은 자기가 가져오고 옷도 자기가 입고 무기도 자기가 구입해서 이렇게 자기 목숨도 내놓으며 하는 헌신적으로 합니다. 또 어떤 사익을 추구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공성을 가지고 합니다  
그런데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양반도 있고 평민도 있고 이렇게 다양한데, 어떤 사람도 그 의병 속에 들어와서 자기의 과거 경력으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평등한 마음으로 적을 향해 싸웠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백의종군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통일을 하기위해 새로운 길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통일을 위한 의병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또 나서지 않으면 통일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이, 가정주부들이, 청년 학생들이 다 뜻을 모아서 통일을 이루는 의병이 되자, 이렇게 해서 통일의병이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신이 우리에게만 머물지 말고 전 국민에게로 널리 퍼져나가고, 또 국가에서도 이것을 반군 취급도 하지 말고, 관군으로 다 끌어들이려고도 하지 말고, 항상 관군과 협력해서 통일을 이루는 데 적절하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배려가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의병은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관군이 무너졌을 때 곳곳에서 일어났고, 불살생 계율을 생명처럼 여기는 스님들마저도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 계율을 파하면서 그 과보를 각오하고 승병으로 참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근세에 들어와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1차 의병, 2차 의병이 일어나서 저항을 했습니다. 그 뜻을 계승해서 독립군이 되어서 만주와 세계 곳곳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오늘 우리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선인들의 은혜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도 미래의 후손들이 우리들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그런 공덕을 쌓아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도 더 이상 분단이라는 무거운 짐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랑스러운 통일한국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할 때 우리가 통일의병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더 굳건히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3.1절 기념행사가 있었습니다. 3.1 기미 독립선언을 한 지가 95주년입니다. 앞으로 5년이 있으면 3.1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적어도 100주년까지는 사실 상의 통일을 우리가 이루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제는 통일로 갈 수밖에 없는 고개를 넘어서줘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럴 때 3.1 독립운동의 정신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왕이 주인이 되는 제국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국가의 수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제국 부흥 운동이 아니고 대한민국 수립 운동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주독립국가라 하더라도 그 국가 안에 소수의 지배 세력이 다수의 국민들을 억압하는 국가라면 국민들로서는 자랑스러운 내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 데서 3.1 독립선언정신은 첫째는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이고, 두 번째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민주국가의 수립, 과거 국가의 복원이 아니고 새로운 국가의 수립입니다  
이 정신을 우리가 계승한다면, 미래 100년을 꿈꾸는 통일한국의 꿈은 첫째, 분단된 나라가 통합이 되는 그런 통일 대한민국을 이루는 일 뿐만 아니라, 바로 이 땅에 사는 국민이 진정으로 주인이 되는 그런 새로운 나라의 건설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민주주의가 더 확산되어서 국민이 진정으로 이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어야 되고, 1%의 사람이 99%를 지배하는 경제력 집중을 벗어나서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고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그런 새로운 통일한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통일한국에는 남북의 지역차별도 없어야 하고, 계급적 차별과 성적 차별도 없는 정말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런 통일한국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통일한국을 꿈꾸는 것은 단순히 분단을 극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희망과 비전, 꿈이 됩니다.  
과거 100년의 역사를 청산하는 것도 통일이고, 미래 100년의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통일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세대가 통일국가를 건설한다면 과거 100년에서 미래 100년에 이르기까지 200여년 역사 안에서는 가장 자랑스러운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데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이 일을 적극적으로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 이런 좋은 일을 하고 계셔서 다시 한 번 큰 격려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격려사를 듣고 청중 모두가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특히 통일의병의 활동은 200년 역사 안에서 가장 자랑스런 활동이 될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참석한 통일의병 모두가 큰 용기와 기운을 얻었습니다 

법륜, 통일의병 조직화 왜 나섰을까? (오마이뉴스)

3월 16일 한국에서 통의의병이 조직되었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올립니다.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316214505225

[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

"재벌이 통일하면 재벌이, 군인이 통일하면 군인이 주인이 된다."

'국민 멘토' 법륜 스님이 그토록 부르짖던 '통일 의병'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 관군이 제구실을 못하던 임진왜란이나 구한말 의병처럼 평범한 생활인들이 뭉쳐 국민이 주인인 통일국가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 의병(공동대표 김홍신, 조성식, 아래 통일의병)' 출범식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통일 의병의 정신적 지주인 법륜 스님(평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의병 대장' 소설가 김홍신씨 등 유명인들도 참석했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름 없는' 200여 명의 의병들이었다.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 의병' 출범식에서 통일 의병 노래 모임인 '학수고대'가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이리고 있다.

ⓒ 김시연

'통일의병'은 통일을 바라는 생활인들의 자발적 공동체로,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평화리더십아카데미'와 '여성리더십 아카데미' 수료생들이 중심이 돼 결성됐다. 내외빈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출범식을 치른 이들 역시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200명 남짓한 '통일의병들'이었다.

법륜 스님 "평범한 시민들이 나서야 통일 돼... 반군 취급 말아야"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 의병' 출범식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다. 통일 의병 고문이자 평화재단 이사장인 법륜 스님이 격려사를 하고 있다.

ⓒ 김시연

지난 2004년 평화재단을 만들 때부터 '통일의병'을 꿈꾼 법륜 스님은 이날도 "의병은 관군이 제 역할을 못 할 때 평범한 백성들이 나서 관군을 비난하는 대신 격려하고 관군이 모자라는 일을 대신하는 것"이라면서 "의병은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고 자원봉사자들"이라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백의종군'을 강조했다.

법륜 스님은 지난 2012년 오연호 < 오마이뉴스 > 대표와 나눈 대담을 엮은 < 새로운 100년-가슴을 뛰게 하는 통일 이야기 > (오마이북)를 출간한 뒤 100회에 걸친 전국 강연을 통해 '통일 의병 모병'에 나서기도 했다.

법륜 스님은 "지금 분단 상태로는 더는 국가 발전을 이루기도 어렵고 자주권을 지키지도 어려운 시기"라면서 "평범한 시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평범한 생활인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특히 법륜 스님은 "재벌이 주체가 돼 통일하면 통일 국가의 주인은 재벌이 될 것이고, 군인이 통일하면 군인이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라면서 "국민이 통일국가의 주체가 되려면 통일을 소수에게 맡겨놓을 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일이란 자각 위에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에 대해서도 "(통일의병을) 반군 취급하거나 관군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말고 관군과 협력해서 통일을 이루는데 적절한 역할을 하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신년 기자회견 때 '통일 대박' 발언에 이어 삼일절 기념사에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자신이 직접 위원장을 맡기로 하는 등 어느 정권보다 통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듯하다가도 최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의 대북 비료 100만 포대 지원 사업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되는 등 남북 관계도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또 북핵에 대한 주변 강국의 경계심도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우리가 대박 나면 북한은 어쩌라고... 발언보다 실천 중요"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 의병' 출범식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다. 통일 의병 공동대표인 소설가 김홍신씨가 통일 의병 출범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시연

이에 김홍신 통일의병 공동대표는 "박 대통령이 발언은 잘했지만 우리가 '대박' 나면 북한은 어쩌라는 것이냐"라면서 "남북이 함께 대박 나려면 발언보다 실천이 중요한데 북한 비료나 어린이 영양식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통일 화두를 던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방법론을 만들지 않으면 거짓말 하는 것"이라면서 "동서가 먼저 감정을 풀지 않고 남북이 통일되면 남북 갈등을 조정할 길이 없는 만큼 지금부터 미리 해서 깔끔한 통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남남갈등 해소'를 주문했다.

참여정부 출신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역시 "통일을 하려면 국민들의 통합된 의지와 남북간 화합 역량, 경제 역량, 주변 국가와의 공조 능력 등 4가지 역량이 필요한데 이 가운데 첫번째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국민들의 의지가 결집되지 않으면 정부 5년 동안 뭘 하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게 국제 사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야당 정치인, 퇴역 장성, 기업체 회장 등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다양한 인사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백왕순 통일의병 사무총장은 "통일의병은 진보도 보수도 중도도 아닌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통합의 길"이라면서 "이념과 정파, 세대와 계층,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는 통일을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극우 진영에서 주장하는 '흡수 통일'은 물리적 충돌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점진적이고 평화적이면서 남한이 책임지고 북한이 선택하는 합의 통일"을 앞세웠다.

백 사무총장은 "북한은 반국가단체 성격도 있어 안보상 가장 위협적인 존재지만 통일의 동반자이기도 하다"면서 "이런 모순을 해결하려면 교류와 협력으로 안보 위협을 줄여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밝혔다.

통일의병들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을 '통일 홍보의 날'로 정해 광화문 등에서 거리 홍보를 펼치는 한편 통일시민학교, 통일방안 국민경연대회, 통일누비길 걷기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특히 오는 9월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선 남북한 공동 응원단을 만들어 북한 선수단이나 응원단과 '작은 통일'도 모색한다.

Saturday, March 1, 2014

대청제국의 부활, 한반도의 운명은? (이병한)

대청제국의 부활, 한반도의 운명은?

[동아시아를 묻다] 제국의 진화

이병한 동아시아 연구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2.03 10:15:54
남북과 양안
갑오년, 통일론이 분출한다. 남북만은 아니다. 양안도 그러하다. 대륙과 대만(타이완) 사이 뼈를 담은 말이 오고 갔다. 시진핑은 이렇게 말했다.
“양안의 오래된 정치적 분열은 점진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결코 다음 세대까지 남겨줄 수도 없다.” 집권 10년의 청사진을 담은 중국 공산당 3중전회에서의 발언이었다. 양안 문제 해결의 긴박성을 촉구하며, 과거의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말라는 지시도 내렸다. 각별하다.
마잉주도 간접적으로 화답했다. 화어권 최고의 권위지인 <아주주간(亞洲週刊)> 신년 특집 인터뷰에 응했다. 올해 가을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시진핑과의 회담을 원한다는 뜻을 공개리에 천명한 것이다. 그는 집권 6년간 양안 간 직항로를 허용하고, 대륙에 진출한 대만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며, 대륙 학생의 대만 유학을 수용하기도 했다. 이미 대만에 유학한 대륙 학생의 경험담이 십수 권 째 출판되었다.
그러나 대만의 여론지형이 녹록치는 않아 뵌다. 2016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의 재집권을 장담키 어려운 형국이다. 물론 민진당이 정권을 회수한다 해도 기존 정책을 철회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속도를 더 내는 것 또한 힘들 것이다. 집권 초기의 시진핑과 집권 말기의 마잉주가 만나야 할 서로 다른 이유가 있는 셈이다. 국공 합작을 도모할 조건은 갖추어졌다.
남북 정상 회담이 두 차례 열렸던 것과는 달리 양안 간 정상은 마주한 적이 없다.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분열 이래 한 갑을 넘겼다. 이순(耳順)이 지난 것이다. 귀가 순해질 때도 되었다. 마침 시진핑과 마잉주 모두 1950년대 출생이다. 1949년의 분열 이후 태어나, ‘두 개의 중국’에서 60년을 살았다. 살아있는 동안 아버지 세대(‘신청년’)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역사적 책무를 나누어 갖는다. 올 가을 ‘세기의 회담’을 기대해보는 까닭이다.
시진핑이 언급한 ‘과거의 사고방식’이란 ’92년 컨센서스’로 짐작된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여전히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92년 이래 양안은 주권(主權)은 상호 불인정하지만, 치권(治權)은 상호 부인하지 않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양쪽 모두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을 지지하되, 각자가 그 ‘하나의 중국’을 대표한다고 자임해온 것이다.
원칙의 공유와 해석의 자유에 기대어 ‘선경후정(先經後政)’이 추진되었다. 경제 합작을 우선하고, 정치 합작은 미루어 둔 것이다. 그러나 양안 간 경제 통합이 벌써 일정한 수준을 넘어섰다. 일본과 미국과의 네트워크로 100년을 지속했던 대만은 이미 대륙과 긴밀한 생활권, 생활망을 형성했다. 정치 의제가 부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부지불식 간 통합에서 통일로 이행 중이다.
그래서 새삼 주목되고 있는 것이 중국 공산당 원로였던 왕따오한(汪道涵)의 발상이다. 그는 1999년 대만 인사와의 접견 자리에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분열을 넘어서서 ‘중국’으로 통일하자는 견해를 제기했던 바 있다. ‘두 개의 중국’에 새겨진 좌우 갈등, 이념과 정권의 다툼이라는 100년의 흔적을 지우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기초하여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과연, 中國이란 두 글자는 퍽이나 의미심장하다. 반만 년 문명 전통이 함축되어 있을뿐더러, 100년의 근대화도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진한에서 명청에 이르기까지 누천년을 지속했던 왕조의 이름이 아니다. 공화국의 국명으로 ‘중국’이 부상한 것이다. 정녕 역사상 처음으로 ‘中國’을 국호로 삼는 국가가 등장할 것인가?
제국의 진화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넘어서 제기된 ‘중국’이 구호로만 그치지도 않는다. 그 내실을 다지는 제도적 방안을 천착해온 지식인으로 중국인민대학의 카오팡(高放)이 있다. 그는 대륙은 조국 통일을 완수해야 하고, 대만은 그 독립성을 보전하며 국제적 활로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대국이 소국을 품는 방식의 제국형 통일을 궁리한다.
국가 안에 국가가 존재하는 정치 형식의 탐구로 근대 국가의 문법을 돌파하는 ‘새 정치’라고 하겠다. 그리고 ‘새 정치’는 ‘옛 정치’와 통한다. 멀리는 중세 유럽의 카롤링거 제국이 거론된다. 노르망디 공국을 품어서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발양했다고 한다. 가까이로는 1876년 성립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있다.
제국형 통일 방안은 연방제도 아니며, 연합제도 아니다. 대륙과 대만 간의 현저한 비대칭성과 불균등함을 고려하자면 연합제와 연방제는 적절치 않은 탓이다. 짐작컨대 티베트, 신장, 내몽골을 품고 있는 대륙의 입장에서도 연합·방은 부담스러울 법하다. 이들 자치구의 면적이 대만에 비해 훨씬 크다.
그렇다고 홍콩과 마카오식의 행정 특구도 적합하지 않다. 무엇보다 1894년 갑오 청일 전쟁 이래 대만과 대륙이 경험한 100년의 역사가 판이하다.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였을 때 대륙은 항일 전쟁을 거듭했고, 대만이 미국의 반공 기지였을 때 대륙은 사회주의의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대만의 민주화 이행과 대륙의 개혁 개방 또한 상이한 경로였다. 따라서 한때나마 독립 기운이 고조되었을 만큼 별개의 국가적 정체성을 강화해 온 대만의 사정을 넉넉히 끌어안아야 한다. 정치(政治)보다는 덕치(德治) 쪽이다. 즉 신장·티베트·내몽골과도 다르고, 홍콩·마카오와도 다른 별개의 독자적 구역으로 삼을 일이다.
그리하여 대만=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교한 국가들에도 공사와 대사관 파견이 가능하다는 파격적 발상이 등장한다. 전혀 터무니없는 구상도 아니다. 선례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리 먼 과거의 일도 아니다. 소련이 그러했다. 즉 소비에트연방에는 ‘독립 국가’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소련은 유엔에서도 3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이었다. 중화민국도 ‘중국’ 안에서 그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오팡의 제국형 통일론이 매우 인상적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느낌을 떨치기도 어렵다. 구태여 카롤링거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소비에트연방으로 우회할 것도 없다. 대청제국이야말로 그가 모색하는 ‘中國’에 값하는 제국형 통일 모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대청제국은 중원과 북방을 통합적으로 지배했다. 중원은 중화 세계의 전통적 통치 방식인 행성(行省)을 매개로 직접 지배하고, 북방은 토착 지배자(몽골과 회강은 왕공, 티베트는 승려)를 통하여 간접적인 지배를 시행했다. 그래서 비중화 세계는 정치적, 문화적으로 중원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지역으로 지속할 수 있었다.
물론 베이징에 이번원(理藩院)을 두어 번부와 관련된 사무를 총괄케 했다. 또한 번부에 주방장군(駐防將軍), 도통(都統), 대신(大臣) 등의 중앙 관료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해당 지역에 대한 ‘관리’의 차원이었지 ‘통치’의 차원은 아니었다. 즉, 제국의 주권을 명확히 해두는 조치에 그치고, 실질적 통치는 현지의 지배자 혹은 종교적 권위자들이 담당했다. 이른바, 주권과 치권의 분리이다.
이로써 대청제국은 중원의 유교 세계, 몽골과 티베트의 불교 세계에 이어 이슬람 세계를 통합하는 보편 제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대청제국의 지배자는 황제이자 현신불(現身佛)이며, 유목 세계의 대칸이면서 이슬람의 보호자로서 보편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한 모습을 과시했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아울러서 등장하는 ‘中國’ 또한 이러한 제국형 정치체에 방불할 것이다. 중원에서는 사회주의의 수호자이며, 홍콩·마카오에서는 자본주의의 후원자이자, 대만에서는 독자적 군대마저도 허용하며 ‘대만 민주’의 지속을 보장하는 것이다. ‘주권’을 확보하되, ‘치권’은 지역의 토착 지배자들에게 아웃소싱하는 ‘복합 국가’이자 ‘제국’으로 대일통(大一統)을 완수하는 것이다.
즉, 중국은 100년을 거듭하여 제국에서 국민 국가로 이행했던 것이 아니다. 장기 지속하는 제국의 근대화, 혹은 제국의 진화를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 유일한 ‘지속의 제국’인 저들의 역사 감각에 비추어 보자면, 100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새 국가의 기초를 닦아 성세를 다짐하는 준비 기간에 그친다. 우리 ‘근대인’들의 시간 감각이 너무나 얕고 밭았던 것이다. 호흡이 좀체 짧다.
백년대계
제국의 진화는 지식과 사상의 지각 변동을 수반할 것이다. 정치학 교과서는 다시 쓰일 것이다. 말은 고쳐 잡고, 패러다임은 전환된다.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민족주의를 수단으로 삼았던 유럽형 국민 국가는 기각될 것이다.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을 촉발함으로써 천하를 어지럽히고 엔트로피를 증폭시키는 산업 혁명 시대의 예외적 정치체로 기록될 것이다. 전국 시대의 일시적인 정치 형식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또한 제자백가의 일파였을 뿐이다. ‘동양적 전제’라 폄하되었던 제국은 재평가될 것이다. 안정과 통합, 질서와 위계가 재조명되고 재조망될 것이다.
머지않아 5·4 운동 100년이 다가온다. 2019년, 코앞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2021년)도 잇따른다. 그 전후로 동서 문화 논쟁 제2막도 개시될 것임을 예감해 본다.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연출될 것이다. ‘신청년’이 모셨던 동구파와 서구파는 흐릿해질 것이다. 100년간 고독했던 동방파가 약진할 것이다.
그 와신상담의 끝에서 양안의 화해도 자리할 것이다. 즉, 양안 간 통합과 통일은 국공 합작, 좌우 합작에 그치지 않는다. 그 기저에 고금 합작이 자리한다. 계몽의 변증법으로 중화를 복원하고 신동방을 창출하는 것이다. 즉, 중국의 통일은 100년 근대화의 완성인 동시에, 누천년 문명의 계승이기도 하다. 따라서 ‘中國’의 새 헌정 또한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닐 것이다. ‘천하위공’을 제 1사표로 삼는 고전적 국가의 재림일 것이다.
허황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인가? 아닌 것 같다. 아닐 것이다. 옛 것을 익히면 새 것을 안다고 했다. 옛 것을 배워서 새 것을 일군다고도 했다. ‘역사의 종언’은 종언을 고하고 ‘역사의 관성’이 기지개를 켠다. 대륙과 대만은 고전문명의 만개, 르네상스를 향하여 성큼성큼 나아간다. 미래를 향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남북의 통일론은 어디쯤에 와 있나? 2019년은 우리에게도 각별하다. 3·1 독립 운동 100주년이다. 2019년의 3·1절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2045년 해방 100년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2050년 한국전쟁 100년은 또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갑오년의 통일론에도 백년대계가 없다. 뜬금없는 대박론에는 여전히 부국강병과 강성대국의 미망이 자욱하다. 20세기형의 발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사상(思想)이 부재한 탓이다. 사상(史像)이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역사 감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하자는 허언이 새어나온다. 1991년 이래 자유민주주의는 쇠잔해지고 형해화하고 있다. 일관된 추세이다.
목하 동(East)과 서(West)가, 고(古)와 금(今)이 반전한다. 시세(時勢)에 걸 맞는 백년대계를 세워야 하겠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 1919년 5월 4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5.4 운동은 반제, 반봉건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역사의 관성'이 기지개를 켠다.
▲ 1919년 5월 4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5.4 운동은 반제, 반봉건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역사의 관성’이 기지개를 켠다.